명장 VS 명장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제목 그대로 전쟁에서 양쪽 국가를 대표하는 명장들이 같은 전장에서 만나 격전을 벌이는 것.
2. 내역 [편집]
인류는 문명을 이루고 그를 토대로 국가를 건설하며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군대를 보유한다. 국가 간에는 영토 확장 및 자원 확보, 세력 과시 등 여러 목적을 두고 전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인구와 생산력 등의 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 거듭된 전쟁 중에는 유능한 장수가 등장하여 그러한 차이를 뒤엎고 승리하거나, 또는 국력이나 전력의 차이 이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명성을 떨치며 인정받은 장수는 명장이라고 일컬어지고 그 이름을 현재까지 남겨왔다.
인류의 차고 넘치는 전쟁사에는 수많은 장수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한줌에 불과하지만, 드물게 그 한줌에 불과한 명장들이 서로 대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명장과 대결하기에 앞서 이미 명장으로 인정받은 만큼, 국가에서는 명장으로 칭송받는 그들을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연히 명장 간 대결은 해당 전쟁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거나 심지어는 국가나 세력의 존망을 두고 벌어지기 일쑤였다. 전쟁사에서 흔치 않은 일종의 빅매치라는 점, 전쟁의 승패를 나누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는 했다는 점에서 명장 간 대결은 후대에도 길이 전해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젯거리가 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런 명장 간의 대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에 명장의 수가 적으므로 전쟁사의 절대 다수는 평범한 장수 간의 대결임이 자명하다. 또 무능한 장수와 평범한 장수의 대결, 평범한 장수와 유능한 명장의 대결이 명장 간 대결보다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한다.
명장 간 대결이 적은 구체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인류의 차고 넘치는 전쟁사에는 수많은 장수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한줌에 불과하지만, 드물게 그 한줌에 불과한 명장들이 서로 대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명장과 대결하기에 앞서 이미 명장으로 인정받은 만큼, 국가에서는 명장으로 칭송받는 그들을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연히 명장 간 대결은 해당 전쟁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거나 심지어는 국가나 세력의 존망을 두고 벌어지기 일쑤였다. 전쟁사에서 흔치 않은 일종의 빅매치라는 점, 전쟁의 승패를 나누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는 했다는 점에서 명장 간 대결은 후대에도 길이 전해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젯거리가 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런 명장 간의 대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에 명장의 수가 적으므로 전쟁사의 절대 다수는 평범한 장수 간의 대결임이 자명하다. 또 무능한 장수와 평범한 장수의 대결, 평범한 장수와 유능한 명장의 대결이 명장 간 대결보다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한다.
명장 간 대결이 적은 구체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명장의 인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 현실은 게임이 아니며, 사람의 능력이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이 경우, 능력을 판단하기에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는 전적이다. 문제는 명장 간 대결에서 패배하는 쪽은 어떻게든 평가절하 당하기 쉬운 입장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게다가 명장과 명장 사이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 일부 명장들은 당대에만 유명세를 떨쳤지만 또 일부 명장들은 후대에까지도 명장으로 기억된다. 당연히 전자가 후자와 맞붙어 패배한다면 그저 후자를 띄워주는 전투력 측정기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 진나라의 이신은 연나라를 멸망시키는 전공을 세운 장수였다. 그는 초를 멸망시키는데 60만 군세가 필요하다는 왕전에게 2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그대로 20만의 군대를 몰고 초를 침공한 이신은 초의 항연에게 대패를 면하지 못했다. 이신을 막아낸 초나라의 항연은 국가를 구해낸 영웅이었다. 하지만 이신의 대패 이후 자신의 주장대로 60만을 이끌고 침공한 왕전에게 패배하고 초는 멸망했다. 이신과 항연은 당대에는 분명 이름을 떨치는 명장들이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승전보다는 한 번의 패전으로 더 자주 언급된다. 패배자가 명장으로서 평가받기 위해서는 그 패배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굵직한 전과들을 많이 쌓아두어야 한다. 하지만 명장 간 대결 이전의 행적은 장수들의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비교적 평화로운 국가에서 태어나 4-5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이긴 장수와 난세에 태어나 20여 번의 전투를 모두 이긴 장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두 장수의 실력이 실제로는 같았다 해도 후세의 평가는 그럴 수 없다. 여지없이 후자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명장으로 인정받는 데에도 필연적으로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 어떤 나라의 누구와 맞붙었냐는 운과 시대 상황 등이 모두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다. 명장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고 전적의 비교라는게 결국 상대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 명장들은 되도록이면 만만한 상대를 고르려고 한다 – 소설과 만화, 영화 같은 픽션에서는 명장들이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승부를 갈망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쟁은 스포츠가 아니다. 장수들의 최우선 목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승리다. 상대가 뛰어난 장수일수록 공략할 수 있는 빈틈이 적고 이기기가 힘들어지며 설령 이겨도 피해가 커진다. 제대로 된 장수라면 당연히 최대한 만만한 상대와 싸우려 한다. 장평대전에서 진나라는 명장 백기를 출전시키는 한편 이간질로 조나라의 명장 염파를 좌천시켰다. 즉묵 방어전에서는 제나라의 전단이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연나라의 명장 악의가 좌천되도록 했다.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책략이다. 즉 명장이라면 상대편 명장과의 싸움을 최대한 기피하기 때문에 명장 대 명장의 싸움이 나오기 힘들다.[1]
그나마도 이러한 명장 간의 대결은 2차 대전 이후로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전쟁의 양상이 현대전으로 변화함에 따라 지휘관의 역량보다는 군대의 체계와 장비의 성능 등이 승패를 가르는 더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 자체를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되면서 전쟁보다는 외교전이, 전면전보다는 국지전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명장의 등장은 고사하고 전투에 나서는 일 자체가 힘들다.
3. 실제 명장 간 대결 사례 [편집]
사례가 얼마 없으므로 지구에서 벌어진 모든 명장 VS 명장들을 기록한다. 기록 순서는 반드시 시기순이다.
- 왕전 VS 항연 - 진의 통일 전쟁
진의 장수 이신의 20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한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과 60만 대군으로 재차 침입한 진 통일전쟁 1등공신 왕전의 충돌. 왕전이 승리하면서 초는 멸망한다. 따로 문서가 없으므로 진(통일왕조)/통일 과정 문서를 참고할 것. - 한니발 바르카 VS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 자마 전투 (기원전 202년)
국력, 병력, 보급이 모두 열세인 상황에서 로마를 멸망 위기까지 몰아붙인 한니발과 그 한니발의 본진을 털어버린 스키피오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최후의 전투. 맞대결에서는 스키피오가 승리했으나 이 두 명장의 비교는 당대 로마서부터 22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야깃거리이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VS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 카이사르의 내전 (기원전 49년)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 마디로 시작된 내전. 끝내 카이사르가 승리하면서 독재 체재를 구축하게 된다. - 아틸라 vs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 카탈라우눔 전투 (451년)
로마 제국과 게르만 족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훈족의 왕 아틸라와 서로마 제국 최후의 명장 아에티우스의 맞대결. 아틸라는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갈리아 공략을 단념한다. - 살라흐 앗 딘 VS 리처드 1세 - 제3차 십자군 전쟁 중 야파 전투 (1192년)
이슬람의 위대한 지도자와 잉글랜드의 사자심왕이 맞붙은 전투.
6만 2천의 군대로 야파 요새를 함락 직전까지 간 살라딘의 군대에 리처드 1세와 100명도 안되는 병력이 돌격, 승리한 희대의 무쌍. 놀랍게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양측 자료에서 교차검증이 되는 전투다. - 제베, 칭기즈 칸, 수부타이 VS 알라 웃딘 무함마드, 잘랄 웃딘 - 몽골-호라즘 전쟁 (1219년)
처음에 잠깐 막아내나 싶었지만 제베, 수부타이를 포함한 총 3방향에서 요새들을 각개격파하는 몽골군 덕에 인구로 천혜의 지형이고 뭐고 그냥 두들겨 맞았다. 호라즘은 첫 전쟁에서만 인구 5분의 4가 갈려나갔다. 몽골군은 3000km를 달리고 세계의 지붕을 넘고도 질주에 가까운 일방적인 학살을 보여줬다고.... - 도요토미 히데요시 vs 도쿠가와 이에야스 -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1584년)
일본의 패권을 둘러싼 두 군웅의 대결. 전술적으로는 이에야스가 완승을 거뒀으나 전략적으로는 이에야스와 연합했던 오다 노부카츠를 회유한 히데요시가 승리했다. -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vs 원숭환 - 영원성 전투 (1626년)
여진족을 통일해 후금을 건국하고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 대군을 섬멸하여 기세를 한껏 끌어올린 누르하치와 산해관 외곽의 변두리 성 수비를 맡은 문관의 대결. 원숭환은 16만 대 2만이라는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영원성을 끝내 사수했고, 후금은 원숭환 생전엔 영원성을 도모하지 못한다.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vs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 브라이텐펠트 전투 (1631년)
30년 전쟁 시기 스웨덴 최고의 명군이자 명장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신성로마제국의 명장 틸리 백작을 격파한 전투. 그 동안 신성로마제국에게 내내 밀렸던 신교 세력은 이 전투 후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연합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착수한다.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vs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 뤼첸 전투 (1632년)
스웨덴의 명군 겸 명장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용병대장 발렌슈타인의 맞대결. 전투 자체는 스웨덴 측의 승리로 끝났지만, 구스타프가 전투 중에 전사했기에 실익은 신성로마제국 측이 취했다고 볼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대왕 vs 라우돈 남작 에른스트 기데온 - 쿠네르스도르프 전투 (1759년), 리그니츠 전투 (1760년)
다운 백작과 함께 오스트리아군의 핵심이었던 라우돈 남작과 프리드리히 대왕의 맞대결. 프리드리히 대왕은 쿠네르스도르프 전투에서 러시아군과 연합한 라우돈 남작에게 완패했지만 리그니츠 전투에서 복수했다. - 제임스 울프 vs 루이 조제프 드 몽캄 - 아브라함 평원 전투 (1759년)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명장이 북미 식민지의 패권을 놓고 퀘벡의 아브라함 평원에서 맞붙은 전투. 두 명장 모두 전사해버린 이 전투는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프랑스는 이로 인해 북미 식민지를 영국에게 모조리 넘겨줘야 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vs 카를 루트비히 -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바그람 전투 (1809년)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운명을 건 두 명장의 맞대결. 나폴레옹은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선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유능한 부하였던 장 란을 상실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지만, 바그람 전투에서는 가까스로 승리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vs 미하일 쿠투조프 - 보로디노 전투 (1812년)
러시아 원정의 대미를 장식한 프랑스 최고의 명장과 당대 러시아의 명장간의 맞대결. 전투 자체는 나폴레옹이 승리했지만, 이후 동절기를 이겨내지 못해 몰락한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vs 아서 웰즐리 +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 워털루 전투 (1815년)
유배지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프랑스로 귀환한 나폴레옹과 당대 영국 최고의 명장 아서 웰즐리가 맞붙은 나폴레옹 전쟁 최후의 전투. 웰즐리가 이끄는 영국군 방어선이 붕괴되기 직전,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그루시의 프랑스군보다 일찍 도착해 전투를 종결지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다. - 율리시스 S. 그랜트 VS 로버트 E. 리 - 남북전쟁 (1864년)
실제로 직접 격돌한 적도 세 번 있었으며, 리가 그랜트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혔음에도 물량공세를 바탕으로 버티고 몰아붙인 그랜트에게 끝내 패배하게 된다. - 사막의 여우 VS 사막의 생쥐. 거침없이 공격해오는 독일군을 상대로 물자와 병력을 축척하며 방어로 일관하던 몽고메리가 일시에 반격에 나선 전투다. 사실 롬멜은 당시 본국으로 휴가를 가 있었기에 직접적인 맞대결은 아니다. 몽고메리의 물량 공세에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붕괴되었고, 롬멜이 돌아왔을 땐 이미 손을 쓸수 없는 상태였기에 독일군은 기나긴 패주를 시작한다. 이 전투에서 사막의 생쥐가 승리하면서 아프리카 지역에서 독일군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승리로 독일 남부집단군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혀 기세등등해진 소련군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엔 만슈타인이 있었고 그는 퇴각하던 독일군을 수습, 하르코프까지 진격한 소련군을 뛰어난 기동전과 수비술로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독일은 전선붕괴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했고, 쿠르스크 돌출부가 형성되어 아래 기술하는 쿠르스크 전투로 이어진다.
- 게오르기 주코프 vs 에리히 폰 만슈타인 - 제2차 세계 대전 중 쿠르스크 전투 (1943년)
소련군 최고의 명장과 독일군 최고의 명장이 맞붙은 역사상 최대 규모급 전투. 소련군의 우주방어에 북쪽을 맡은 발터 모델은 일찌감치 퇴각하였으나, 남쪽을 맡은 만슈타인은 돌파에 성공해 소련군을 위기에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후방에서 달려온 소련 전차부대와 격전을 벌인 끝에 독일은 공세 능력을 상실하고 퇴각한다. 막대한 손실만 입은 나치 독일은 이후 소련군을 일시적으로 붙잡을 뿐 대규모 공세를 개시할 능력을 잃었다. 즉, 이 전투로 소련은 자신들의 우위를 완전히 굳히는데 성공했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 vs 발터 모델 - 제2차 세계 대전 중 마켓 가든 작전 (1944년)
롬멜을 격파한 영국군의 명장과 '방어의 사자'의 맞대결. 몽고메리는 1944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호기롭게 작전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부실한 작전 계획, 발터 모델의 엄청나게 신속했던 역습으로 인해 패색이 짙어졌으며, 영국 공수부대의 처절한 저항에도 전략적 목표달성에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노르망디 상륙 작전 성공 후 폭풍같았던 기세가 한풀 꺾여 연합군은 독일을 향한 공세를 이듬해로 미룬다. - 펑더화이 vs 매튜 B. 리지웨이 - 한국전쟁 중 지평리 전투 (1951년)
중공군 개입 이후로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펑더화이와 맥아더의 후임으로 지명돼 나온 리지웨이의 대결. 이 전투에서 리지웨이는 철저한 우주방어로 펑더화이의 중공군을 틀어막는데 성공하여 남한 땅을 대부분 탈환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 위와 같이 전장의 낭만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역사를 신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명장이라고 평가받는 인물들은 전술과 전략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전략적으로 봤을 때 전쟁에서는 가장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2] 초한지의 다소 무능한 유방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존인물 유방은 엄연히 준수한 장수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3] 초한전쟁 바로 이전의 최초 통일 국가였던 진나라가 통계한 인구 현황이 약 2000만 명이었는데, 유방이 통일한 후에 낸 인구 통계에서는 고작 500만 명이었다. 정말 국가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싸운 셈. 실제로, 역사서 사기에는 어딜가도 시체가 즐비했던 당시 초한전쟁의 상황을 인외마경이라고 칭했다.[본문] 안량, 문추 모두 원소의 명장이었는데 두 차례 싸움에서 모두 격파되자 원소군이 크게 동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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